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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주님은 누구든지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처음에는 이해가 어렵습니다.

    생명을 미워하라고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려 하심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존재와 삶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주신 복된 말씀이었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합니다.

    자기를 죽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편한 것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기도가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택이 십자가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십자가가 부활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부활이 우리의 구원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주님이 그 길을 몸소 가셨습니다.

    수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길을 자신이 영광을 얻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반대로 모든 것을 버려도 자기를 살리고 남을 살리면 그것이 영광이었습니다.

    세상은 더 갖는 것을 성공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버리는 것을 영광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사시대 입다의 딸이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께 잘못된 서원을 했지만 그 서원을 지키기 위하여 처녀로 죽었습니다.

    그 결단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릅니다.

    하물며 주님의 선한 뜻을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다시는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남은 때를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너희가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

    이 역설이 주님이 걸어가신 길이었습니다.

    매일 죽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매일 자기를 부인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죽으면 오늘 또 자라납니다.

    그래서 날마다였습니다.

    그 날마다의 선택이 쌓이면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됩니다.

    그 길을 가기로 결단할 때부터 주님께서 도우십니다.

    혼자 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먼저 그 길을 가셨고 지금도 함께 걸어가십니다.

    오늘 그 역설의 진리 안에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 가르쳐 주소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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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꿈의 사람이요 또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꿈과 믿음이 있을 때 기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꿈이 없고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가 아닌가를 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구도 기도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비밀한 계획을 알게 하시고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도가 없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합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 앞에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조급했습니다.

    스스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아닌 행동으로 앞서갔습니다.

    그것이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늘 주님께 물었습니다.

    내가 이 블레셋 사람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그리고 이겼습니다.

    기도가 먼저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이 되리라고.

    이 말씀을 들은 그때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꿈이 됐습니다.

    그 꿈이 기도를 낳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새벽 아직 밝기 전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신 분이 새벽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기도의 분량이 사역의 분량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랬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소식을 듣고 수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 이후에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 기도가 왕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성벽이 다시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기도행전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를 통해서 성령이 임하기까지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기도 없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이런 유가 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도를 막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바빠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바쁘실 때 가장 많이 기도하셨습니다.

    기도가 바쁨을 이기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가 어두울 때에 한없이 아파하시면서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고통 때문에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고통의 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계획을 함께 이루십니다.

    오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기도하고 있습니까. 기도하지 않는다면 꿈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믿음이 식은 것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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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네 믿는 대로 되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네 믿는 대로 되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 있으라 하시매 있었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으며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됐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되어진 것이 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창조 때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신 것을 다 되게 하시고 그 결과 다 보시기에 좋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을 때 그대로 되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경 말씀을 믿을 때 네 믿는 대로 되라 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아는 것과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 앞에 섰을 때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반면에 갈렙과 여호수아는 믿었습니다.

    우리가 능히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상황 같은 말씀인데 믿음이 달랐습니다.

    그 믿음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백부장이 그랬습니다.

    주님께 말씀만 하소서 그리하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감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믿는 대로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즉시 하인이 나았습니다.

    네 믿는 대로 되라

    우리가 기도할 때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루어진 후에 믿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하는 그 순간 이미 받은 줄로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 믿음에 하나님이 그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크기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을 때 그대로 되게 하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어떤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까.

    그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으십시오.

    받은 줄로 믿고 기도하십시오.

    네 믿는 대로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그 결과를 오늘 믿음으로 기대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지금도 우리가 그 말씀을 믿을 때 그대로 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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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자신의 현실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망과 사망 중에 있더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여도 응답은 없고 고난만 계속 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이 왜 특별한지를 생각합니다.

    조건이 맞을 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상황이 좋을 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응답이 왔을 때 믿는 것은 경험이고 확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믿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반대로 말할 때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진짜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백세가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삭을 드리라는 말씀을 받았을 때도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했습니다.

    그 믿음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게 했습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몸마저 병이 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어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습니다.

    결국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지켰을 때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났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블레셋으로 도망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육백 명이 돌을 들어 죽이려 하는 비참함 속에서도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도망자에서 왕이 됐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노예로 팔리고 깊은 옥에 갇히고 기약 없는 옥중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구원자가 됐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환도뼈가 위골되어도 그럼에도 믿고 간구하므로 이스라엘이 됐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랬습니다.

    침묵으로 거절로 모욕으로 대하셨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었습니다.

    주님이 그 믿음에 감동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그 믿음이 진짜 관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조건이 맞을 때만 믿는 관계는 진짜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조건과 상관없이 신뢰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고 진짜 믿음이었습니다.

    주님도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절망스럽습니까.

    응답이 없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으십시오.

    그 믿음이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겠습니다. 절망 중에도 응답 없는 시간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믿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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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복을 주시면 하나님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복을 주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복을 주시면 하나님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복을 주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인간은 왜 편안하고 응답은 받고 축복을 받고 부요하고 쓰임을 받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나태하고 교만하고 배은망덕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악을 행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랬습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았습니다.

    홍해를 건넜습니다.

    만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는 바알을 섬겼습니다.

    복을 받으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구원하셨습니다.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또 기회를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지혜를 받았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가장 많이 받은 자가 가장 크게 타락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솔로몬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지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탕자의 아버지를 보면 조금 이해가 됩니다.

    아들이 재산을 받아 떠날 것을 알면서도 주셨습니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돌아왔을 때 달려나가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도 그 아버지와 같으셨습니다.

    버릴 줄 알면서도 주셨습니다.

    그 기다림이 사랑이었습니다.

    복을 주시면 하나님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복을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자신을 믿고 의지하고 찾는 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복을 주시면 하나님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렇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시며 우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또한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교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갈 때 근심하시고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스스로 알게 하셔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 때문이 아닌 하나님을 갈망하여 찾게 하셨습니다.

    세상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아닌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실패와 수많은 좌절과 탄식이 있다고 해도 기다리십니다.

    모두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에 한 사람 만에 한 사람이 그렇게 된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 사람을 바라보시고 그렇게 하십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오늘 받은 복이 있다면 그 복 때문이 아닌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복을 주시면 버림받으실 것을 알면서도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이 오늘도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천에 한 사람 그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복을 주시면 버림받으실 것을 알면서도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랑 때문에 오늘도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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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는 용서의 기도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는 용서의 기도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는 용서의 기도입니다.

    용서의 기도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 주님께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향하여 하신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흉악하고 무지한 죄인들을 향한 주님의 온갖 긍휼과 자비가 그 기도 안에 녹아있었습니다.

    거역하며 멸망으로 가는 온 인류를 품으시고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애절한 사랑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주님의 기도가 무지한 자들을 향하여 드리는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용서가 왜 어려운지를 생각합니다.

    내가 받은 상처가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드린 기도를 보면 그 논리가 무너집니다.

    주님을 못 박은 자들이 잘못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조건이 없었습니다.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상대방의 무지를 품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때 우리도 알지 못하면서 줬습니다.

    우리가 한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됐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용서를 받아야 할 존재였습니다.

    나도 알지 못하면서 상처를 준 자라는 것을 알 때 상대방의 알지 못함이 이해가 됩니다.

    그 이해가 용서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님의 조건 없는 용서의 기도가 강도를 구원하였습니다.

    스데반의 조건 없는 용서의 기도가 바울을 있게 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외쳤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 자리에 사울이 있었습니다.

    그 용서의 기도가 사울의 마음에 박혔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형들이 그를 팔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판 것을 슬퍼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나를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조건 없는 용서였습니다.

    그 용서가 가족을 회복시켰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는 용서의 기도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그 상처가 내 안에 남아있었습니다.

    용서할 때 그 상처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용서는 자기를 가장 평안한 가운데로 인도하는 능력이었습니다.

    무한한 용서만이 자기를 무한하게 용서받게 하고 무한한 자유를 얻게 했습니다.

    오늘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내 마음이 무거운 것이 있습니까.

    그 무거움이 사실은 나 자신을 묶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용서의 기도가 그 묶임을 풀어줄 것입니다.

    오늘 용서의 기도를 드려보십시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드리신 그 기도처럼.

    그 기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였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용서하지 못한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도 무한한 용서를 받아야 할 자임을 고백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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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더욱 영광스러운 몸이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더욱 영광스러운 몸이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봄이 오면 겨우내 죽은 것 같은 만물이 다시 소생합니다.

    따스한 봄볕이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면 땅속에서 깊은 잠을 자던 각종 애벌레들과 곤충들과 식물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소생함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부활의 진리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확실한 부활에 대한 증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시고 핍박자 사울에게까지 보이시므로 부활을 확증하셨습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열매의 시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땅에 묻힌 씨앗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생명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봄이 오면 싹이 올라옵니다.

    그것이 부활의 그림이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가 울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도 마르다처럼 죽음 앞에서 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그 말씀이 슬픔 속에서도 소망을 붙들게 합니다.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더욱 영광스러운 몸이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참 소망이 됨은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사 우리도 주님과 같이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썩을 몸이 주님과 같은 영광의 몸으로 변화됩니다.

    봄에 만물의 소생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욱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영광스러운 몸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바울이 그 소망을 알았습니다.

    부활이 목표였습니다.

    그 목표가 바울의 고난을 이기게 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오늘의 고난이 달리 보입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의 일에 힘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살아서 주님을 믿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도 영원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영원한 삶이 오늘의 선택을 달라지게 합니다.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게 합니다.

    주의 일에 힘쓰게 합니다.

    죽음은 절망이 아닌 더욱 영광스러운 몸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그 확신으로 오늘도 살아갑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활의 소망으로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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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법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법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과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시고 교제하시고 구원하시고 동행하시고 한 몸으로 존재하십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존재와 삶에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원하고 바라고 구하지도 않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행하시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즉 우리의 원함이 없이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인격적으로 관계하시고 존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기도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은 지 3년 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비가 오기를 구했습니다.

    무릎을 땅에 꿇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었습니다.

    일곱 번을 그렇게 했습니다.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늘이 구름으로 덮이고 큰 비가 내렸습니다.

    히스기야가 그랬습니다.

    죽게 되었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벽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구했습니다.

    원했습니다.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15년을 더하셨습니다.

    원함과 구함이 하나님을 움직였습니다.

    반면에 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벳세다 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당연히 낫고 싶을 것 같은데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그 물음 속에 원함의 중요성이 있었습니다.

    38년이 지나면서 낫고자 하는 원함이 희미해졌을 수 있었습니다.

    포기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원함을 다시 깨우셨습니다.

    우리도 오래 기다리다 보면 원함이 희미해집니다.

    기도가 줄어듭니다.

    그때 하나님도 일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원함이 없이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법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하나님을 원하지도 않고 구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요.

    지금까지의 삶을 따라 사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고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구하고 찾는 대가를 지불하기 싫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고 고침을 받고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시기를 우리보다도 더 원하십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나님을 구하고 원하고 찾는 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불행이고 또한 하나님의 고통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지금도 누군가 보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기에 보존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소통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고침을 받고 싶습니까.

    변화를 받고 싶습니까.

    그 원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말씀과 기도로 소통하십시오.

    하나님이 그 원함에 응답하십니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우리가 원하고 구할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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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잘못된 자기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잘못된 자기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자신의 모든 것이 철저히 틀린 사람일수록 자신이 가장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역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모세를 믿고 율법을 지키므로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들의 믿음 행동 말 생각과 판단이 모두 틀렸습니다.

    그런데도 틀린 줄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잘못된 확신이 결국 예수님을 죽게 했습니다.

    그 일을 하나님을 위하여 잘한 일이라고 확신하면서.

    바울도 그랬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옥에 가두는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가장 정당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앞장서면서도 잘한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을 만나고 나서야 자기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방인이나 무할례자들과는 결코 교제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오순절 성령을 받은 후에도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확신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생각합니다.

    오래 믿었을 때 생깁니다.

    많이 알 때도 생깁니다.

    많이 했을 때도 생깁니다.

    오래됨과 앎과 많이 함이 잘못된 확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래서 오래 믿을수록 더 겸손해야 했습니다.

    많이 알수록 더 물어봐야 했습니다.

    잘못된 확신을 깨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주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이 바울의 모든 확신을 무너뜨렸습니다.

    잘못된 자기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 고백이 무겁습니다.

    나도 주님이 보여주시기까지 나의 생각과 판단이 가장 성경적이고 옳은 것이라고 행동해 왔습니다.

    내 생각이 늘 옳다고 생각하여 이기려고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닫고 책망만 하는 교만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주님께서 내 눈에 덮였던 것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교만함과 사랑 없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 앎이 주님 앞에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 앎이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열게 했습니다.

    이제야 주님께서 내 눈에 덮인 것들을 보게 하신다면 그것이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를 오늘도 구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내 생각과 판단의 틀린 것을 보여주소서. 잘못된 자기 확신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교만함과 사랑 없음을 보게 하시고 주님 앞에 낮아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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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그 어느 것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그 어느 것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그 어느 것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주님께서 옳고 그름의 모든 것과 선과 악의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그 결과를 통해서 말씀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판단을 잘못하므로 악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판단을 주님께 맡기고 묵묵히 진리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자기의 판단과 선택이 아무리 옳은 것 같아도 최후의 판단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때 신중하고 또 신중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이 아무리 옳아 보여도 하나님 앞에는 틀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욥이 그것을 알았습니다.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욥은 친구들의 판단이 틀렸다고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욥과 친구들의 변론은 끝없이 계속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라.

    욥의 친구들을 책망하시고 욥의 정당함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욥이 판단을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판단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입을 닫는 것이었습니다.

    내 억울함을 사람에게 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욥이 한 것은 하나님을 향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 판단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판단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 다윗이 그 판단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직접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 맡김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어느 것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치어진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우리가 판단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내가 판단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이 없었습니다.

    내가 물러설 때 하나님이 나서실 수 있었습니다.

    판단을 내려놓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들고 있던 것을 하나님 손에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이 선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라도 잠잠히 주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억울한 상황이 있습니까.

    잠잠히 주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판단이 선하시고 의로우십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내 판단을 주장하고 싶은 상황이 있습니까. 그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 잠잠히 바라볼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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